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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영역을 넓히는 길
안녕하세요. HIDE Lab 6기 및 8기 학부연구원으로 활동했던 유휘구 입니다. 이후 스타트업 ‘신선고’ 에서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는 현대자동차 양재 본사 상품본부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앞서 신선고에서 경험한 디자이너의 역할 확장에 관해 첫 번째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디자인적 사고가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어떻게 기획의 도구로 작동하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두 번째 글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이전으로 돌아가, 학교와 연구실에서 저에게 주어진 기회를 받아들였던 태도와 그 선택들이 어떻게 지금의 진로로 이어졌는지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학생에게 주어지는 기회
학교생활을 돌아보면 당시의 제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꼈던 기회가 많았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역할을 맡아야 할 때도 있었고, 부족한 실력으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새로운 분야를 익히며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지금 이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가’보다 ‘이 기회를 놓친 뒤에도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학생인 저는 이미 완성된 스타 디자이너도 아니었고, 모든 문제를 능숙하게 해결할 수 있는 프로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누군가에게 기회를 받았다면, 어렵더라도 일단 해보는 편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회를 피하는 것보다, 부족한 상태로 시작해 그 안에서 배우는 편이 훨씬 많은 것을 남긴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학생 시절만큼 부족함을 인정받으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시기도 많지 않습니다. 당장은 감당하기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라도, 기회가 주어졌다면 우선 선택하고 그 다음에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도전 속에서 갖춰지는 준비
물론 제가 선택한 모든 일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기대만큼 해내지 못한 적도 있었고, 제 부족함을 여실히 확인한 순간도 많았습니다. 새로운 역할을 맡을 때마다 괜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부족했던 경험조차 다음 선택의 밑바탕이 되어 있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다뤄본 경험, 처음 접하는 주제를 끝까지 파고들어 공부해 본 경험, 사람들 앞에서 제 생각을 설명해 본 경험, 서로 다른 사람들과 역할을 나누며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본 경험이 조금씩 쌓였습니다.
각각의 경험은 당시에는 서로 연결되지 않은 점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HIDE Lab에서의 수많은 산학 활동 경험과 다양한 프로젝트, 스타트업 실무를 거치면서 그 점들은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명확한 진로를 세운 뒤 필요한 경험만 골라온 것이 아니라, 눈앞의 기회를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에서 제가 잘할 수 있는 일과 더 배우고 싶은 일이 점차 선명해졌습니다. 저에게 준비란 모든 능력을 갖춘 뒤 출발선에 서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시작한 뒤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씩 채워가며 다음 기회를 맞이하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전공을 기반으로, 반경을 넓히는 선택
상품기획 역시 처음부터 정해 두었던 목적지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디자인을 공부하고 여러 경험을 거치면서 저는 결과물을 직접 표현하는 일뿐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그 방향을 세우는 일에 제가 더 관심이 있고,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같은 전공에서 출발하더라도 어떤 질문을 품고 어떤 경험을 쌓았는지에 따라 각자의 영역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디자인을 떠나 상품기획으로 옮겨간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디자인을 통해 갖게 된 관점과 사고방식을 상품과 시장이라는 더 넓은 영역에서 활용해 보고 싶었습니다. 전공을 내려놓고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전공을 품은 채 제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의 반경을 조금씩 넓혀온 셈입니다.
그 과정에서 HIDE Lab은 디자인의 경계를 고정된 것으로 바라보지 않게 해준 공간이었습니다. 한 분야의 언어에만 머무르지 않고, 필요하다면 다른 분야의 지식과 방법을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태도를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좁은 문에서 얻은 기준
올해 초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 박기철 교수님과의 면담 중 지금까지도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렵지만 좁은 문을 선택해야 사람이 발전한다.” 이 말씀이 더욱 깊게 다가왔던 것은 교수님 역시 산업디자인에서 출발해 공학의 언어와 접점을 만들며 디자인엔지니어링이라는 영역을 넓혀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익숙한 전공의 범위에 머무르기보다 서로 다른 분야 사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오신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며, 영역을 넓힌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좁은 문은 단순히 경쟁이 치열하거나 통과하기 어려운 길 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익힌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익숙한 자신을 넘어야 하는 길에 더 가까웠습니다.
디자인 전공자인 제가 상품기획 직무에 도전하는 일도 그런 좁은 문 중 하나였습니다. 익숙한 결과물만으로 저를 설명할 수 없었고, 지금까지의 경험을 상품기획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해야 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만큼이나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문제를 바라보았는지, 서로 다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스스로 정리해야 했습니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디자인 전공자로서 가진 가능성을 더 넓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좁은 문을 선택한다는 것은 가능성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일이라는 생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기회를 경험으로 만드는 태도
교수님께서 면담 때 해주셨던 또 하나의 말씀은 “인성과 근성을 가진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회를 얻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맡았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결과를 만들어내는 근성이 있어야 그 기회를 온전한 경험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또한 혼자만의 성과에 집중하기보다 함께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신뢰를 쌓는 인성이 있어야 더 큰 역할과 다음 기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기회를 얻었는지가 아니라, 주어진 기회를 어떤 태도로 대했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던 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책임졌을 때 비로소 다음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끝으로 저는 이제 다시 새로운 기회 앞에 서 있습니다.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훨씬 많고, 또다시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일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완벽하게 준비되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부딪쳐 보고, 부족한 부분을 배우며 제가 가진 역량의 반경을 계속 넓혀가고자 합니다. 전공은 우리가 머물러야 할 경계를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영역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렵지만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좁은 문을 선택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공의 반경을 넓혀가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디자인을 통해 배운 관점을 새로운 언어와 연결하며, 저만의 영역을 만들어가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가르침을 베풀어주시는 박기철 교수님께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교수님께서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 덕분에, 언제나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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